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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나이는 어느덧 서른. 나에겐 서른이란 나이는 정말 안올줄만 알았다.^^; 아직 마음은 젊을때(?) 그대로인데 나이만 든 느낌이랄까.ㅎ 어쨌거나 서른쯤되니 대학 동창중에도 여자들은 거의 시집을 다 갔고, 남자 동창들도 하나둘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한다. 대학시절 내내 여자 친구 하나 없던 녀석이, 졸업하자마자 갑자기 급(?)장가를 간다고 하질않나. 숨은 능력자였을까.^^; 어쨌든 며칠전에도 필자의 고등학교동창인 H군에게 청첩장을 하나 받았다. 서울쪽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더니 서울에서 하는군.; 미안하다 친구야. 못가겠다, 왔다갔다 차비만 10만원이다. 뭐 원래 인생이란 그런거다.-_-;
각설하고.; H군의 혼사에도 크나큰 굴곡이 있었다. 이 친구에겐 사귄지 4년된 동갑내기 여자친구인 Y양이 있었다. 4년이란 기간동안 알콩달콩하기도했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야말로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버린 커플이었다. 꽤나 오랜기간 사귀면서 서로의 가족들과 만난것도 수십차례나되고 가족들이든, 친구들이든 이 둘은 당연히 결혼할꺼라고 생각했고, 그 둘도 종종 결혼에 대한 얘기를 막연하게나마 했었다고한다. 게다가 H군도 취업한지가 1년이 다되가고, 이제 서른인 H군으로썬 크게 급하지않았지만 여자 나이도 어디 같으랴. 여자친구인 Y양을 생각해서라도 조만간에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내야겠다고 다짐하던 H군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H군이 여느때처럼 Y양의 집에 놀러갔는데 Y양의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상을 물리려는데 갑자기 Y양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더란다.
Y양 아버지: 이보게, H군. 둘이 사귄지도 꽤 되었고... 이미 취업한지도 1년이 다되가고 어느정도 기반도 잡힌것 같은데 이제 그만 결혼도 생각해 보는게 좋지 않겠는가.
안그래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H군, 기다렸다는 듯 남자답게 말했다.
H: 네. 안그래도 저도 이미 생각해 둔 바 있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길 꺼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일단 날은 집에 가서 상의를 해보고... 상견례 날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Y양 아버지: 그래, 그래야지. 너무 오래 끌면 안될것같고, 최대한 빨리하는 걸로 하도록 하지.
딸이 서른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Y양의 아버지도 꽤나 답답하셨나보다. Y양은 부끄러웠던지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기만했고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한다. 어쨌든 그리하여 상견례 날이 잡히고, 분위기 있고 괜찮은 한정식 집에서 양가 어른들이 만나 날짜도 대충 잡았다. 세부 사항은 H군과 Y양 둘이 결정하기로 하고...
그리고 며칠뒤 H군은 Y양을 만났다. 그럴싸한 프로포즈를 못해준게 아쉬워서 Y양 몰래, 약간 진부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차 뒤 트렁크에 풍선과 꽃을 담고 '결혼해줄래'라고 담긴 플랜카드와 반지를 준비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Y양이 불쑥 말을 건낸다.
Y양: H. 나 이 결혼 해야할지 안해야할지 아직 확신이 안서.
순간 H군은 충격에 맥이 풀리면서 핸들을 놓칠뻔했다고 한다. 급하게 브레이크를밟고 갓길에 차를 댔다. 너무 화가 났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H군: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미 어른들하고도 다 얘기 오고간거잖아. 결혼 일자까지 다 잡힌 상태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하니.
Y양: 우리 아버지하고 너하고 둘이 결정한거잖아. 내 의사는 왜 안물어보는데...
H군: (조금 목소리가 커지며) 너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이게 어떻게 나 혼자 결정한 일인데? 생각이 없다면 처음부터 그때 얘기를 했어야지. 이게 무슨 말이니?
Y양: 난 아직 공부도 더 하고싶고... 해보고 싶은거도 많은데 결혼하면 그런것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잖아.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꼭 지금 해야하는 생각도 들고 너하고 꼭 결혼을 해야하는 확신도 없네.
순간 H군은, Y양을 그대로 거기 내리고 가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고 한다. 하지만 착한남자 H군은 가까스레 마음을 억누르고 조용히 이야기를 해봤으나 Y양은 훌쩍이기만 할뿐... 대답이 없었던것. 일단 집까지 그녀를 바래다준 H군.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었던지 술 마시고 울면서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털어놓고는 슬픈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H군: 우리 벌써 사귄지 4년이나 됐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결혼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프로프즈까지 그렇게 준비했는데.... 4년이란 시간은 뭐였을까... 나에대한 믿음이 그렇게 없었던 걸까. 라이너스 군. 나 안타깝지만 Y와 헤어져야겠다. 이렇게 억지로 밀어붙여서 결혼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두고두고 날 원망하고 후회하면 어쩔까...
H군이 너무 안됐다. 그리고 아프고 화나고... 실망해서 모든걸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상대방을 사랑하고, 어느정도 시기만 된다면 결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은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남자들보다 훨씬 복잡한 고민들을 안고있다고한다. 그래서 결혼을 목전에 두고 헤어지는 커플도 많은듯...
첫째, 둘 사이에 어느정도 묵시적으로 결혼이 예정되어있었다고 하더라도... 먼저 Y양과 결혼 문제를 확실히 해놓지않은 상태에서 Y양 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통해 날을 잡았던 점은 H군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물론 나중에 프로프즈를 따로이 멋지게 해줄 예정이었지만 Y양으로썬 그것까지 예상하기는 힘든일. 그럼 중간에 아니라는 의사를 말하면 되지않겠느냐, 라는 반론이 들어올수도 있겠지만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는 상태에서 중간에 끼여들어 초를 칠 용기가 Y양에겐 없었던 걸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기대했는 결혼의 방향으로 진행되지않고 자기 의사와는 별개로 간다는 느낌에 평생 주위에 의해 끌려 다닐것 같은 불안감을 느낄수도있다.
둘째,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의 문제다. 흔히들 고부갈등이라고 하는. 어쩌면 대한민국 드라마의 필수 요소라 불리우는 바로 그 문제^^; 물론 H군의 이야기에서는 그 부분에대해선 상세하게 안나오지만... 일단 우리나라에선 남자가 여자집으로 장가를 간다는 느낌보단 여자가 남자집으로 시집을 온다는 느낌이 강하다. 따로 나와 살던 같이 살던 간에 엮이지 않을수 없는 문제. 눈치도 봐야되고, 신경도 써야되고, 그런걸 한번도 겪어보지않은 여자로써는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을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겠지만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며 살수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물론 남자들은 여자들로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실망해서 화가나고, 헤어지고 싶을수도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택이고, 한번밖에 할수 없는 그 선택에서 망설이게 되는건 인간이라면 어쩔수없는 부분일것이다. 비유가 조금 조악하지만, 물건을 살때도 이회사 저 회사 브랜드 다 비교해 보고, 인터넷 이사이트 저사이트를 다 둘러보고, 가격이랑 제품이 제일 괜찮은걸로 찍었지만. 최종 결재 버튼을 누를때 다시 한번 망설여지는 그 심리. 작은 물건 하나 살때도 그런데 그보다 수백배, 수천배 더 큰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오죽하랴^^;
이럴땐 한걸음 물러섬이 필요하다. 정말 억지로 결혼을 밀어붙였다간 H군 말마따나 Y양은 두고두고 원망을 하던가 후회를 할수도있다. 심지어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더라도, 한가지 불만이 생기면... 자기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거에 대한 불만이 싹트기 마련이다. 원래 사람은 선택해보지 못한것에 더 아쉬움을 느끼는 법이므로^^; 한걸음 물러서서 서로에게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해보자. 그 기간 동안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내게 어떤 존재인지... 그런 사람과의 결혼이란 정말 얼마나 중요한일인지... 충분히 생각해보게끔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자.
원래 모든 걸 다 가질순 없다. 중요한걸 선택하고, 덜 중요한건 포기할줄도 알아야한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때 옆에서 한번 더 생각을 할수있게끔 천천히 배려하며 격려해주는 든든한 남자가 있다면 여자의 불안한 심리도 많이 해소될수 있을 것이다. 이쪽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오히려 저쪽에선 한걸음 다가오기 마련이므로...^^ 필자의 충고를 받아들인 H군은 Y양과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필자는 H군과 Y양의 결혼 청첩장을 이렇게 받아들었다. 이 정도의 문제 해결 능력이라면 둘의 앞으로의 결혼생활도 행복하게 잘 해나갈 수 있을것이다. 결혼 축하한다, H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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