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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라 여행중 들렀던 교세라 본사...


교세라라는 기업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는가?


일본 굴지의 전자부품 회사로 우리가 쉽게 접할수있는 카메라, 복사기, 세라믹류에서부터 최근에는 태양열 발전에까지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은 6남매가 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공부할 형편이 안되어 쇼후공업에 입사하게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구를 개을리하지않아 입사 2년만에 개발팀의 지휘르 맡게되고 독립된 회사를 차리게된다. 1956년 창업 당시 직원7명, 자본금 300만엔 작은 부품 공장으로 시작해서 직원 3만명 매출 1조엔의 초대형 회사를 키웠다.


직원의 개성을 중시하는 아메바식 경영으로도 유명한 이나모리 회장은 윤리경영을 중시하고 유럽연합(EU)같은 공동체와 같이 한중일도 각국의 젋고 패기찬 경영자들이 한데모여 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해야한다고 역설했다고한다. 현재 76세인데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신 분인듯.


2005년도에 퇴직하면서 그가 받은 퇴직금은 6억엔(56억원정도)인데 이는 2003년도에 소니의 전회장인 오가 노리오(大賀典雄)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교세라 이사들은 퇴직금이 너무 적다고 반대했으나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나는 일을 즐겼고, 사회에 공헌해 왔다"며 이사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나마 퇴직금중 4억엔은 모교인 가고시마대학에 나머지 2억엔도 대학 관련 교육기관에 기부했다고한다.


이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바로 씨없는 수박으로도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이다. 잘알려진데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우범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일본인 사카이이다. 4세때 본국에서 보낸 자객에게 아버지를 여의고 극빈한 가정형편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1919년 도쿄제국대학실과의 농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일본 농림성에 들어가 육종학 연구에 착수하여 1930년 겹꽃 피튜니아꽃의 육종합성에 성공하여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며 종의 합성설로 1936년 모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광복 후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일본 기업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승만 박사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한국농업연구소장에 취임하며  채소종자의 육종합성및 씨없는 수박, 벼의 수도이기작 연구등의 성과를 내게된다.


매국노란 불명예 속에 죽어간 아버지, 그런 남편의 나라 한국을 원망하지않고 조국에 미안한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친 그의 어머니, 그리고 모든 조건을 다 버리고 광복 후 피폐해진 조국에 힘이 되기 위해 돌아갔던 우장춘 박사. 그의 대단하고 훌륭한 인품만큼이나 그에겐 사람(이나모리:사위) 보는 눈도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어쩌면 육종학자인 그에겐 매우 쉬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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